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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파라오’가 욕이 된 사연 고대 역사와 현대 정체성의 충돌

by 글로벌세상 2025. 6. 5.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욕이 된 사연 고대 역사와 현대 정체성의 충돌에 대해 알아볼게요.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욕이 된 사연 고대 역사와 현대 정체성의 충돌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욕이 된 사연 고대 역사와 현대 정체성의 충돌

 

찬란했던 파라오의 시대, 왜 부정적인 상징이 되었나?

이집트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를 고르라면 아마 대부분은 ‘파라오(Pharaoh)’를 떠올릴 것입니다. 투탕카멘, 람세스 2세, 클레오파트라 등 파라오 왕조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상징이자,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정점이었죠.
하지만 정작 오늘날 이집트 국민들 사이에서 ‘파라오’라는 단어는 욕설 혹은 모욕적인 언사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대 왕조에 대한 현대 이슬람 문화의 불편함
오늘날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입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이며, 종교적 가치가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그런데 파라오 시대는 이슬람 이전, 우상숭배와 다신교가 중심이었던 고대 문명이죠. 특히 꾸란에서는 파라오(피르아운, Fir'aun)를 오만하고 악한 폭군으로 묘사합니다.

“그(파라오)는 자신을 신이라 자처했고, 모세의 신을 부정하며 악을 저질렀다.” — 꾸란, 수라 알까사스(28:38)

이러한 종교적 서술은 파라오라는 단어에 자연스레 ‘불신자’, ‘악인’, ‘독재자’의 이미지를 덧씌우게 됩니다. 즉, 과거의 위대한 왕이 아니라 신을 대적한 자로 인식되는 것이죠.

 

교육과 정치 이념의 영향
이집트의 공교육과 종교교육에서는 파라오를 꾸란 속 인물로 접근합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역사적 사실보다 도덕적 교훈의 대상으로서 파라오를 배우게 되며, 이로 인해 고대 이집트는 부정적으로 각인되기 쉽습니다.
또한 20세기 중반 이후 이어진 정치 독재의 경험들—나세르, 무바라크 등—은 파라오라는 단어를 ‘권위주의 독재자’에 비유하는 정치적 은유로 고착시켰습니다.

 

“너 파라오냐?” 이집트식 욕의 문법

이집트 일상 속에서 ‘파라오’는 의외로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고집을 부릴 때, 사람들은 “엔타 피르아운?” (너 파라오냐?) 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언급이 아니라 ‘오만하고 폭력적인 사람’에 대한 풍자입니다.

 

파라오 = 독재자 + 오만한 자
현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말 안 듣는 사람”, “권력을 남용하는 자”, “남을 무시하는 위선자” 같은 의미로 확대 적용됩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자주 쓰입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버릇없이 굴 때
→ “작은 파라오 하나 키우는구만.”

회사 상사가 권위적으로 굴 때
→ “우리 부서 파라오 한 명 있음.”

정치 지도자를 비판할 때
→ “우린 또 하나의 파라오를 만났군.”

이처럼 ‘파라오’는 단순한 과거 왕조를 넘어,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를 풍자하는 은유로 활용됩니다.

 

민감한 단어가 된 역사적 상징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점은, 관광업의 중심인 고대 유적과 상징물(피라미드, 스핑크스 등)은 국가 경제의 핵심이지만, 국민 정서에서는 그것을 만든 인물들의 이름조차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이중적인 태도는 단지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체성의 충돌이라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고대 문명과 이슬람 정체성 사이의 긴장

이집트는 자타공인 고대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집트 국민의 대다수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 대해 ‘우리 조상’이라는 친밀감보다는 거리감과 종교적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형성된 걸까요?

‘국가 브랜드’와 ‘국민 정체성’의 괴리
관광청과 국제 홍보에서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국가 아이덴티티로 전면 내세우지만,

이슬람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란 국민 다수는 이를 불편한 과거, 혹은 죄의 역사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한 나라 안에 두 개의 역사관이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정부는 피라미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국민은 꾸란 속 피르아운을 경계하는—상반된 감정이 부딪히는 지점입니다.

정체성 혼란과 교육의 역할
특히 젊은 세대에게 있어 이집트의 고대 유산은 역사 시험에 나오는 고정된 문답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파라오는 애국심의 상징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배척해야 할 인물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교육과 문화 콘텐츠, 종교 담론 속에서 점점 더 뿌리 깊게 확산되고 있으며, 언어 표현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파라오’라는 단어가 품은 시대의 무게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더 이상 단순히 찬란한 왕의 상징이 아닙니다. 종교적 윤리, 현대 정치, 언어 문화가 얽힌 복잡한 단어입니다.
외국인에게는 신비로운 고대 문명일지 몰라도, 현지인에게는 조롱과 경멸, 혹은 조심스러운 단어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파라오’라는 단어를 둘러싼 이집트인의 복합 감정은 과거와 현재, 신과 인간, 외부 시선과 내부 자각 사이의 충돌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언어는 단지 단어가 아닙니다. 그 단어에 담긴 역사와 문화, 가치관까지 함께 이해할 때 진짜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파라오’라는 단어가 강력하게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