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중국’이라는 단어를 조심해야 하는 역사적 이유 역사적 감정과 현대 언어의 긴장에 대해 알아볼게요.

천년의 지배, 베트남의 중국에 대한 역사적 기억
베트남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수천 년간 긴밀하고도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의 핵심에는 ‘지배와 저항’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고대: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1,000년 지배의 기억
기원전 111년, 한나라가 지금의 베트남 북부를 병합하면서 시작된 중국의 지배는 약 1,000년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베트남은 문화·언어·정치제도 전반에서 중국식 모델을 강요받았고, 수차례의 반란과 저항이 이어졌습니다.
대표적 저항 인물: 쯩 자매(Trưng Sisters), 쯔어우 딘(Trieu Thi Trinh)
938년 응오꾸엔(Ngo Quyen)이 백등강 전투에서 승리하며 독립 선언
이러한 식민 지배에 가까운 역사는 베트남 국민 정체성의 핵심에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깊이 심어놓았습니다. ‘중국’을 단순한 이웃 국가로 인식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독립을 위협했던 강대국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현대 베트남 사회에서 ‘Trung Quốc(중국)’이라는 단어의 민감성
오늘날에도 베트남인들은 중국을 정치적·문화적으로 예민한 존재로 인식합니다. 특히 ‘Trung Quốc(중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민감한 반응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단어가 단순한 지명이나 국가명을 넘어, 역사적 상처와 정치적 긴장을 소환하는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1) 국경 분쟁과 남중국해 갈등
1979년 중국이 베트남 북부를 침공한 중월 전쟁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최근까지도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해양영유권 주장과 베트남 어선 나포 등이 이어지며, 양국 관계는 극도로 경직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뉴스, SNS, 일상 대화에서 ‘중국’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논쟁이나 불편함이 촉발되기 쉽습니다.
2) 문화·경제 침투에 대한 반감
중국산 제품이 베트남 시장을 점령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중국산=품질 불신’이라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자국 문화와 주권을 지키기 위한 문화적 자부심을 강조하며, 중국 콘텐츠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3) 언어 사용에서의 실제 사례
베트남에서 외국인이 “중국 음식 좋아해요” 혹은 “중국 제품 저렴하네요” 같은 말을 무심코 했을 경우, 상대방이 침묵하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일이 발생합니다.
일부 민감한 지역이나 대화 상대에 따라, ‘중국’이라는 단어 대신 ‘북쪽 나라’, ‘큰 나라’, ‘대륙 쪽’ 같은 우회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여행자와 외국인이 지켜야 할 커뮤니케이션 예절
베트남은 비교적 외국인에게 친절한 나라지만, 특정 주제에 있어서는 언어적 민감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특히 ‘중국’을 언급할 때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 선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1) 문화와 역사에 대한 리스펙트가 우선
“왜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구는 걸까?”라는 질문보다는,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베트남은 독립 전쟁과 식민 경험이 정체성의 중심인 나라입니다. 중국뿐 아니라 프랑스, 미국과의 전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중국’이라는 단어는 무심코 꺼낸다고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매우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용어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2) SNS나 대중 공간에서 주의할 표현
‘중국과 비슷하다’, ‘중국에서 온 것 같다’는 표현은 베트남인에게 모욕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베트남의 의상, 음식, 언어, 문화를 설명할 때 중국과 비교하거나 동일시하는 표현은 절대 금물입니다.
예: “이거 중국식이에요?” → “이거 전통 베트남 스타일이에요?”
3) 대화 팁: 비중립적인 주제는 피해라
상황 피해야 할 표현 권장되는 표현
제품 이야기 “중국산이라 싸요” > “가격이 참 합리적이에요”
음식 이야기 “중국 요리랑 비슷하네요” > “베트남 요리는 정말 독특하네요”
역사 이야기 “중국 영향 많이 받았죠?” > “베트남만의 오랜 전통이 있군요”
단어는 단어 이상이다
‘중국’이라는 단어는 많은 나라에서 중립적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하나의 단어가 수천 년의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어적 방아쇠입니다.
외국인으로서, 또는 여행자로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이 아니라 타인의 정체성과 감정을 존중하는 언어 습관입니다. 단어는 곧 정체성이고, 기억이며,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문화 감수성은 단순히 단어 하나를 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공존의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