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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쿠르드’ 언급이 민감한 까닭 민족 정체성과 언론 검열의 경계선

by 글로벌세상 2025. 6. 4.

터키에서 ‘쿠르드’ 언급이 민감한 까닭 민족 정체성과 언론 검열의 경계선에 대해 알아볼게요.

 

터키에서 ‘쿠르드’ 언급이 민감한 까닭 민족 정체성과 언론 검열의 경계선
터키에서 ‘쿠르드’ 언급이 민감한 까닭 민족 정체성과 언론 검열의 경계선

 

터키와 쿠르드: 오랜 역사, 갈등의 뿌리

터키 공화국은 다민족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단일 민족 국가’라는 정체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인구의 약 15~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은 고유의 언어, 문화, 역사적 배경을 지닌 자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해온 집단입니다.

쿠르드족은 터키 동부 및 남동부에 대거 거주하며,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에도 분포하는 국경 없는 민족입니다. 문제는, 터키 내 쿠르드족이 독립 또는 자치권을 요구하면서, 국가 정체성과 충돌해 왔다는 점입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PKK(쿠르드노동자당)는 터키 정부에 대항하여 무장 투쟁을 벌였고, 이는 테러리스트 단체로 분류되어 지금까지도 강한 탄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쿠르드족에 대한 언급은 터키 내에서 곧바로 국가 분열을 조장하는 위험 발언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쿠르드’라는 단어 자체가 특정 민족을 넘어 정치적 저항, 분리주의, 무장 갈등 등 복합적 상징을 띠게 되면서, 사회 전반에서 매우 민감한 언어적 금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인가, 국가 안보인가: 언론과 예술의 경계선

터키에서 쿠르드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단지 민족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터키 정부의 언론 정책과 검열 시스템의 핵심을 건드리는 일입니다. 실제로, 쿠르드족 관련 이슈를 다룬 언론인, 작가, 영화 감독들이 구금, 수감, 방송 금지, 출판 제한 등의 처벌을 받은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터키의 유명 저널리스트들은 PKK 관련 뉴스 보도나 쿠르드 자치권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표현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테러 조직 옹호’ 혐의로 기소된 바 있습니다. 심지어 쿠르드어 노래를 부른 가수, 쿠르드족 전통 춤을 춘 공연단도 검열과 제재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쿠르드족과 관련된 모든 언급은 사전 검열, 자기 검열, 혹은 처벌의 위험을 동반하게 됩니다. 특히 SNS의 확산 이후, 터키 정부는 온라인 공간에서도 쿠르드 관련 게시물에 대한 감시와 차단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는 이를 국가 안보와 통합의 필요성으로 정당화하고 있지만, 국제 사회는 이러한 조치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과 국제 인권 단체들은 터키의 언론 자유 수준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쿠르드’라는 단어가 갖는 언어적 위상이 점점 더 정치화, 범죄화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평범한 대화에서도 조심해야 할 단어

터키 현지에서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쿠르드’라는 단어는 상당한 주의를 요합니다. 누군가의 출신 지역을 묻거나, 문화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쿠르드족이야?”라고 질문하는 것조차 민감한 정치적 질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특히 외국인 여행자나 디지털 노마드, 취재자 등은 이 단어를 사용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터키엔 쿠르드 사람들도 많다던데?”라고 말하는 것조차, 상대방의 정치 성향이나 감정에 따라 심각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쿠르드 관련 주제를 꺼낼 때에는 ‘정치적 중립’ 또는 ‘문화적 다양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PKK’, ‘자치국’, ‘분리주의’ 등 민감한 용어는 현지에서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표현이며, 외국 언론 기사 인용도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합니다.

쿠르드어 사용 여부, 전통 복장, 문화 행사 등도 공식적인 자리나 민감한 공간에서는 회피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한편, 터키의 젊은 세대 중 일부는 SNS를 통해 보다 열린 시각으로 쿠르드 문제를 바라보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민족주의’와 ‘통합’이라는 국가 기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쿠르드’라는 단어는 터키 사회에서 단순한 민족 지칭을 넘어, 오랜 갈등과 상처, 그리고 정치적 균열을 품은 상징어입니다. 언어란 본디 중립적인 도구 같지만, 역사와 감정이 축적된 사회에서는 단어 하나가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금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터키를 여행하거나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는 ‘무심코 던진 말’이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지역일수록, 단어의 선택은 문화적 예의이자 생존 전략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쿠르드족도, 터키인도 자유롭게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어의 무게를 알고 말하는 것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