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유 정치 갈등이 언어 사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볼게요.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의 역사적 무게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지명을 넘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 정체성 중 하나로 자리 잡아 왔다. 이 단어의 기원은 고대 로마 제국 시절 ‘팔레스티나(Palaestina)’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 유대인의 존재를 지우려는 의도로 사용된 명칭이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과 영국 위임통치령 시절을 거치면서도 이 지역 전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지리적, 정치적, 민족적 의미가 얽혀 있는 단어로 남아 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는 더욱 분열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주권과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자신들을 ‘이스라엘 국민’으로 규정했지만, 아랍계 주민들과 주변 아랍국가들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를 통해 독립국가 건설과 자결권을 주장해 왔다. 결과적으로 이 단어는 국제 정치 무대에서도 큰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언론·정치·교육·대중문화 등에서의 사용 여부 자체가 입장 표명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UN이나 국제 언론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이스라엘 정부가 항의 성명을 내는 경우도 흔하다. 이는 단어 하나가 정치적 선전과 갈등의 불씨로 이어질 수 있는 이 지역 특유의 민감성을 잘 보여준다.
일상 언어 속 ‘팔레스타인’의 검열과 자기검열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자유롭게 쓰이지 않는다. 특히 유대계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입장 표명으로 간주된다. 학교 교과서, 공영방송, 정부 발표 등 공적 담론에서는 종종 ‘팔레스타인’ 대신 ‘테러조직’, ‘자치정부’, 혹은 특정 지역명(예: 가자 지구, 서안 지구) 등의 중립적이거나 대체된 표현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공영방송에서는 팔레스타인 관련 뉴스를 다룰 때 “팔레스타인 민간인”이라는 표현보다 “가자 지구 거주자”라는 식으로 지리적 표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려는 의도이자 동시에 이 용어를 둘러싼 민감도를 피하려는 자기검열의 일환이다.
더불어, 이스라엘 내 아랍계 시민들조차 ‘팔레스타인’이라는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예컨대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주제로 한 논문이나 토론을 할 경우 정치적 편향성을 의심받거나, 극단적인 시선을 받는 일이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이자, 언어의 정치적 경계가 뚜렷한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이스라엘 내 일부 진보 지식인이나 인권단체, 좌파 정당에서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정치적 연대의 표현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종종 사회적 비판이나 심지어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언어 선택이 개인의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짓는 강력한 신호가 되는 상황을 만든다.
‘말’이 전선이 되는 사회: 언어로 나뉜 정치지형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단어 하나의 선택이 곧 정치적 입장 표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는 극단적으로 분열된 두 세계관 사이의 전선을 형성한다. 한쪽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평화와 공존을, 다른 쪽에서는 국가의 정당성과 안보를 지키는 방식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 민족성, 종교, 생존권과 맞물린 복합적 갈등이다. 예컨대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 내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게양하거나,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장하는 표현을 테러 미화 행위로 간주하고 처벌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국제사회에서는 이런 조치를 언론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언어적 민감성은 교육 체계, SNS, 광고 등에서도 드러난다. 기업들이 제품을 출시하거나 마케팅을 할 때조차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이미지나 표현을 배제하는 일이 흔하다. 이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어 표현의 다양성과 자유가 제한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이 같은 언어적 분열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일부 청년들은 영어를 매개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교류하며 정치적 편향성을 뛰어넘은 대화를 시도한다. 이들은 기존의 강경한 표현을 피하고, 보다 감정적 공감과 인간적 경험을 중심으로 언어를 재구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언어가 정치적 도구가 아닌 공감의 매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단어 하나에도 감정이 실리는 지역, 그럼에도 말해야 하는 이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은 단순한 국경이나 영토 문제를 넘어서 ‘존재의 인정’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한 민족의 존재와 기억, 저항과 희망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단어 하나가 폭력, 테러, 안보 위협으로 인식되는 현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말이 곧 정치이고, 언어가 전선이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중립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정치적 민감성에 대해 신중해지는 것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언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더더욱 절실하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감정과 역사,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일은, 갈등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와 공존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